[트럼프 2기 개막] 보편관세에 영토 야욕까지 드러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부인 멜라니아 여사가 18일(현지시간) 버지니아주 스털링에 있는 트럼프내셔널골프클럽에서 취임식 사전 행사로 열린 불꽃놀이를 관람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20일(현지시간) 더 강하고 독해진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들고 백악관으로 복귀하게 된다. 트럼프 2기의 미국 우선주의는 세계를 향해 보편관세 부과를 예고하고 영토 확장 야심을 드러내며 팽창주의로 변모하고 있다. “동맹도 예외가 없다”던 집권 1기 기조를 넘어 캐나다처럼 가장 가까운 동맹국부터 타격하며 더 노골적인 대외 정책을 표방하는 모양새다. ‘먼로 독트린’이나 ‘명백한 운명’ 같은 과거 미국의 팽창주의 시절을 상징하는 개념들도 되살아났다.
트럼프는 지난해 11월 대선 승리 직후 이웃 나라인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해 마약 밀수와 불법 이민을 막지 않으면 모든 수입품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압박했다. 캐나다를 향해서는 “미국의 51번째 주”라는 모욕적인 언사도 서슴지 않았다. 트럼프에게 난타를 당한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자국 정치에서 궁지에 몰렸고, 결국 사퇴를 선언했다.
미국의 일부로 편입하겠다는 트럼프의 발언이 단순한 농담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은 덴마크 자치령인 그린란드를 인수하겠다는 말로 더 선명하게 드러났다. 덴마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이지만 트럼프는 이를 개의치 않았다. 북극 자원·항로 확보를 노리던 트럼프는 덴마크로부터 독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그린란드 여론 일각을 파고들었다. 무테 에게데 그린란드 총리는 지난 17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덴마크인이 되고 싶지 않지만 미국인도 되고 싶지 않다. 우리는 그린란드인이 되고 싶다”면서도 “미국과 함께 강력한 협력을 원한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파나마 운하 통제권도 되찾겠다는 입장이다. 지난 7일 기자회견에서는 그린란드와 파나마 운하 통제권을 가져오기 위해 군사력과 경제적 힘의 사용도 배제하지 않겠다는 뜻을 시사했다. 파나마 운하에 대해 “중국이 운영 중”이라는 근거 없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는 유럽 강국들도 가리지 않았다. 트럼프는 동맹국들에 대해 ‘안보 무임승차론’을 제기하며 국방비 증액을 압박하고 있다. 특히 나토를 향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2%대인 현행 국방비 비중을 5%까지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 지명자는 지난 16일 나토의 국방비 부담과 관련해 “부유하고 선진국인 나토 파트너들이 자국 국방과 나토 파트너십에 더 많은 기여를 해야 한다”며 트럼프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나토 추산에 따르면 지난해 GDP 대비 국방비 지출은 폴란드가 4.12%로 가장 많았다. 반면 영국(2.33%) 독일(2.12%) 프랑스(2.06%)는 2% 선을 겨우 상회했고, 이탈리아는 1.49%로 목표치에 미달했다.
한국도 트럼프의 방위비 분담 협상에서 예외가 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는 대선 승리 전까지 한국에 대해 ‘머니머신(현금지급기)’이라고 부르며 방위비 분담금을 현재의 9배 수준인 100억 달러(약 14조6000억원)까지 증액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한국과의 방위비 협상도 시간문제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우크라이나 전쟁 등 시급한 외교 현안이 정리되면 트럼프의 시선은 한국을 향할 가능성이 크다. 협상의 지렛대로 쓰기 위해 주한미군 철수나 감축 등의 카드를 꺼낼 수 있다는 우려도 팽배하다.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 지명자는 최근 상원인사청문회에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태세를 강조하며 “장관으로 임명되면 어느 병력을 전진 배치할지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미군 병력을 재배치할 수 있다고 예고한 것이다.
외교가에서는 “트럼프에게 거론되지 않는 것이 차라리 자국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말도 나온다. 트럼프는 재집권을 확정한 뒤부터 입에 올린 국가들에 대해 예외 없이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압박했다.
트럼프 2기에서 동맹 간 존중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트럼프가 캐나다와 덴마크를 노골적으로 압박하는 틈에 차기 행정부 실세로 떠오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영국의 키어 스티머 총리와 독일의 올라프 숄츠 총리를 조롱하며 정치 개입을 노골화하고 있다. 독일 언론에 현지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을 지지하는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
트럼프의 일련의 외교 정책 방향이 제국주의적 성향을 드러낸 것이라는 평가는 미국 내부에서도 나온다. AP통신은 “트럼프의 언어는 유럽의 식민지 강대국을 정의했던 19세기 세계관을 반영한다”며 “이미 동맹국들은 그의 세계 무대 복귀의 의미에 대해 고심하고 있다”고 비평했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의 새로운 ‘명백한 운명’을 구축하려는 선언은 국제적 비난이나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며 “미국 우선주의를 신조로 삼는다면 외교 정책이 팽창주의로 기울어지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명백한 운명’은 19세기 미국의 영토 확장과 제국주의적 외교를 정당화했던 이념이다.
트럼프는 자신의 팽창주의에 대해 ‘먼로 독트린’을 차용한 ‘돈로(도널드+먼로) 독트린’으로 설명한 자국 언론 보도를 소셜미디어에 공유하기도 했다. 먼로 독트린은 미국 5대 대통령 제임스 먼로가 1823년 유럽의 간섭을 배제하고 아메리카 대륙의 미국 패권을 주장한 개념이다. 트럼프의 돈로 독트린은 200여년 전 고립주의와 팽창주의를 혼합한 공격적 외교 기조를 되살리겠다는 뜻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된다.
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