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식에서 뚜렷해진 '영토 확장' 전선…국경·영토 일방 변경 시도
19세기와 유사한 흐름…러시아·중국·인도 등에도 나쁠 것 없어
올해 세계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 이후의 변화에 관심을 집중하며 숨죽이며 긴장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대선 이후 많은 이가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 제재와 압력을 가할 것으로 생각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초점은 중국에 맞춰져 있고, 이 과정에서 고율 관세와 투자 금지 등이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당선 이후 두 달이 지난 지금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는 이런 예측을 뛰어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캐나다, 멕시코에 대해 우선적으로 압력을 행사했다. 불법 이민, 마약 등에 대한 확실한 단속과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양국으로부터 수입되는 물품에 대해 25%의 관세를 무기한 부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미국 플로리다 트럼프 대통령 자택을 방문해 관련 조치를 취할 것임을 설명하는 등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돌려놓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그치지 않고 캐나다가 미국 51번째 주로 편입되는 것이 어떻겠냐는 등의 제안을 했고 트뤼도 총리는 결국 사임을 선택했다.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은 지지율 80%를 기반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압력에 강경하게 맞서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할 말을 하는 모습에 높은 인기를 유지하고 있지만 이런 태도가 과연 멕시코에 도움이 될 것인가라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셰인바움 대통령은 은행과 통신 등 주요 기간사업에 대한 경쟁을 촉진하는 독립 규제기관을 폐지한다는 방침을 밝혔고 대법관을 포함한 사법부 판사 대부분을 투표로 선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급격한 제도 변화는 미국-멕시코-캐나다 무역협정(USMCA) 규정 위반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를 계기로 트럼프 대통령이 USMCA 폐기를 정당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1월2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워싱턴DC의 캐피털 원 아레나에서 열린 실내 취임식 퍼레이드에서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EPA 연합
"美 이익 침해 용납 못 해" 동맹도 예외 없어
트럼프 대통령이 국경을 접하고 있는 이들 국가에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데 대해 우선 양국을 미국의 뜻에 따라 움직이도록 한 후 다른 국가에 대해서도 비슷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멕시코와 캐나다를 시범 케이스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2017년 취임 이후 보였던 행보와 비슷하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예상을 뛰어넘어 파나마와 그린란드로까지 전선을 넓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1999년 12월31일 미국이 파나마에 양도한 파나마 운하 통제권을 되찾을 것이며, 필요하다면 군사력 투입도 배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표면적 이유는 파나마가 운하 이용의 대가로 부과하는 수수료가 턱없이 비싸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파나마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음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의도로 해석된다.
중국은 파나마 운하 입구에 있는 두 개의 항구를 관리하고 있는데 전략적으로 중요한 운하의 정보를 관리하고 있으며, 유사시 운하를 통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었다. 미국 공화당은 오래전부터 파나마 운하 반환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혀 왔으며, 파나마 운하를 매수해 미국 통제하에 두도록 하는 법안을 제출할 예정으로 알려지고 있다.
파나마 운하의 경우 과거 미국이 소유했다가 반환한 것인 데 반해 그린란드는 덴마크 영토로서 현지 주민들이 자치권을 행사하고 있는 지역이라는 점에서 파장이 더욱 클 전망이다. 과거 덴마크는 트럼프 대통령의 매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지만 이번에는 상당히 신중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미국 내에서는 강압적인 수단이 아니라 적절한 외교적 방안을 강구해 매수 또는 합병할 수 있다면 미국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여론이 힘을 얻고 있다.
뜬금없어 보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와 같은 행보를 종합해 보면 그가 세계를 앞으로 어떻게 대할 것인지를 대략적이나마 알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세계의 여러 가지 일에 과도하게 개입하면서 필요 이상의 비용과 희생을 치렀다고 확신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영향권이라고 간주할 수 있는 지역에 대해서는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미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이런 미국의 영역에 대해 도전하는 세력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응징하겠다는 생각이다. 주요 강대국의 세력권에 대해서는 일정 부분 인정해 주겠지만 미국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점에서 보자면 가장 우선 챙겨야 할 곳은 미국이 속해 있는 북미 대륙이다. 과거 19세기 제임스 먼로 대통령이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세력권을 주장했던 것처럼 북미 대륙에 대해선 미국의 압도적인 영향력을 인정받고 중국 등 다른 세력을 밀어내기 위한 시도를 할 가능성이 높다. 당장 남미의 경우 아르헨티나의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과는 친밀감을 과시하고 있으며, 친(親)트럼프 성향을 강조했던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브라질 대통령을 취임식에 초청했다.
1월7일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가운데)가 그린란드 누크에 도착한 후 웃고 있다. ⓒAP 연합
트럼프의 세계 질서 재편 속 우리의 대응은
아메리카 대륙과 더불어 미국이 전통적인 세력권으로 간주하던 영역은 서반구다. 서경 20도 서쪽의 지역을 가리키는 서반구는 20세기 초반부터 미국의 영역으로 여겨졌다. 서반구에는 아메리카 대륙과 카리브해의 여러 섬들, 그리고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가 포함된다. 미국은 이들 서반구를 방어한다는 명분으로 그린란드와 더불어 영국이 점령하고 있던 아이슬란드에도 1941년 기지를 건설했다.
서반구가 미국 세력권에 속해 있음이 분명하다면 아시아 지역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어디까지를 고려하고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여러 가지를 종합해 보면 한국과 일본, 그리고 필리핀 정도를 확실한 미국 영향권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만의 경우 여러 차례 미국이 대만 방위를 왜 책임져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표시한 바 있어 모호한 상태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으로서는 아시아 지역의 세력권에 대해서는 중국의 입김을 차단하는 대신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적극적 조치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 보자면 한국과 일본은 충분한 경제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미국에 안보와 방위를 의존하면서 미국인들의 세금을 축내고 있는 존재다. 미군 주둔의 대가로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거나 더 많은 현지 투자를 통한 무역흑자 축소 및 미국 내 고용 창출 등 적극적 조치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점과 세계관은 모든 국가가 동등한 주권을 가지고 있으며 국경과 영토를 힘으로 일방적으로 변경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는 기존의 가치관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하지만 그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기를 원하고 있으며, 과거의 논리를 가지고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에 개의치 않고 자신이 생각하는 질서를 강요할 가능성이 높다. 이와 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논리는 러시아, 중국, 인도 등 주요 강대국에게 나쁠 것이 없다. 19세기 제국주의와 유사한 흐름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 옳고 그름을 따지기 이전에 상황을 파악하고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것이다. 미국의 의도가 우리 경제 및 안보에 미칠 영향을 면밀히 검토하면서 신속하게 대응해야 할 것이다.
시사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