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주도권 힘겨루기
한은도 통화정책 고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2017년 11월2일 집권 1기 당시 지명한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이사회 의장 후보가 연설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로이터=뉴스1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미국의 경제대통령'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제롬 파월 의장이 29일(현지시간) 연준의 기준금리 동결 결정을 두고 정면 충돌했다. 연준이 트럼프 대통령의 잇단 금리인하 공개 압박에 사실상 반기를 들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이 '빅2'의 금리 주도권 힘겨루기에 촉각을 기울일 수밖에 없게 됐다. 한국은행도 미국 통화정책 지형 변동 가능성에 따른 불확실성 확대로 통화 정책을 펴는 데 고민이 깊은 분위기다.
연준은 이날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진행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시장 예상대로 기준금리를 기존 4.25~4.5%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석달 연속 이어진 금리 인하 행진이 이날 결정으로 멈췄다.
연준은 인플레이션(물가상승)과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불확실성을 동결 이유로 꼽았다. "실업률이 최근 몇 달 동안 낮은 수준에서 안정됐고 노동시장 상황도 견조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인플레이션이 다소 높은 수준"이라는 것이다.
파월 의장은 기자회견에서 "금리 인하를 서두를 필요가 없다"며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이민·재정정책과 규제가 경제에 미칠 영향을 평가하기 위해 구체적인 정책이 제시되길 기다릴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전후로 꾸준히 금리인하를 요구한 가운데 연준이 인플레이션 완화와 트럼프 정책 확인을 선결조건으로 내건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준을 맹비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금리동결 발표 직후 SNS(소셜미디어)에서 "연준이 은행 규제와 관련해 형편 없었다"며 "재무부가 금융 규제 완화를 주도하고 대출을 풀 것"이라고 밝혔다. 또 "파월 의장이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문제를 막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래픽=김다나
파월 의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1기였던 2017년 11월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의 후임으로 지명했다. 하지만 파월 의장이 임기를 시작한 2018년부터 통화정책 완화 요구를 거부하고 금리인상에 나서면서 둘 사이의 관계는 출발부터 삐걱댔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조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연준이) 미쳤다", "파월을 해임할 권리가 있다"며 연준에 압력을 행사하려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기 집권 직후인 지난 23일에도 세계경제포럼 화상연설에서 "금리를 결정하는 주요 책임자보다 내가 금리를 훨씬 더 잘 안다"며 연준을 겨냥한 발언을 이어갔다.
파월 의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언사에 이날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이 말하는 것이 무엇이건 어떤 대응이나 논평도 하지 않을 것"이라며 "연준은 늘 그랬던 것처럼 우리 일을 하겠다"고 밝혔다.
파월 의장이 연준의 독립성 유지 의지를 고수하면서 이날 뉴욕증시가 소폭 하락에 그치는 등 트럼프 대통령 발언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 제한적이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연방기금 금리선물시장은 올해 6월에 다음 금리 인하가 이뤄질 가능성을 높게 본다.
법적으로 미국 대통령이 연준 통화정책에 간섭할 권한은 없다. 다만 둘 사이의 갈등이 계속될 경우 미 의회 상·하원을 장악한 트럼프 대통령이 해임 관련법 개정을 시도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현행 연방준비제도법에 따르면 연준 의장을 비롯한 이사회 구성원은 '정당한 사유'가 있을 때만 해임될 수 있다.
상황이 극단적으로 치닫지 않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의 연준 흔들기가 지속되면 시장 불확실성이 증대될 가능성 역시 충분하다. 파월 의장의 임기는 2026년 5월까지다. 연준 이사로서의 임기는 2028년 1월까지다.
머니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