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날, 유럽 국가들은 파리서 긴급 회의
젤렌스키 “우리 없이, 우리 문제 해결할 지도자는 세계에 없다” 반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18년 7월 16일 핀란드 헬싱키의 대통령궁에서 회담을 시작하며 악수를 나누고 있다.미국과 러시아는 사우디 리야드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협상을 진행한다./AP 연합뉴스
미국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해, 17일(현지 시각) 사우디 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첫 미팅을 가진다. 이 회담은 미국 측에서 마크 루비오 미 국무장관과 마크 월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스티브 위트코프 중동 특사가 참석하며, 러시아 대표단은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이끈다.
이번 회담은 지난 1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90분 간 통화를 통해, 전쟁을 신속하게 마무리 짓기로 한 데 따른 것이다. 2022년 2월24일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바이든 행정부는 푸틴과의 대화를 단절했었다. 이 탓에 푸틴은 국제사회에서 ‘부랑아’ 취급을 받았으나, 트럼프 집권 2기를 맞아 다시 국제사회에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
마르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이 17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킹 칼리드 국제공항에 도착해 압둘마지드 알-스마리 사우디아라비아 의전담당 차관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그러나 이번 리야드 회담에는 지난 3년 간 6만8200여 ㎢의 국토를 러시아군에 빼앗기고 10만 명에 가까운 군인과 민간인이 숨진 우크라이나는 물론 우크라이나를 지원한 나토의 유럽국가들은 배제됐다. 크림 반도를 제외하고, 러시아군이 3년 간의 전쟁에서 현재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는 우리나라의 강원도와 경상도, 전라도를 합친 면적과 비슷하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왼쪽)이 17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회담에서 마르코 쥬리치 세르비아 총리를 환영하고 있다./AP 연합뉴스
이날 회담에 초청 받지 못한 유럽국가 정상들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주도로, 같은 날 파리에서 만나 우크라이나 상황과 앞으로 미국이 점차 발을 빼는 유럽의 안보에 대해 긴급 논의한다. 이 회의에는 독일ㆍ영국ㆍ이탈리아ㆍ폴란드ㆍ스페인ㆍ네덜란드ㆍ덴마크 총리와, 마르크 뤼터 나토(NATO) 사무총장,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등이 참석한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미국 NBC 방송에 “우리 참여 없이 우리에 대해, 러시아 푸틴과 딜을 맺을 수 있는 지도자는 전세계에 누구도 없다”며 “우크라이나의 참여 없는 미국과 러시아 간 어떠한 결정도 결코 수용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트럼프 “때 되면, 우크라이나도 협상에 참여할 것”
지난 12일 트럼프는 푸틴과 통화한 뒤에 “푸틴과 젤렌스키 모두 전쟁 종식을 원한다”고 말했다. 푸틴과의 통화 자체도 젤렌스키에게 미리 알려주지 않았고, 나중에 통보했다. 또 지난 주 트럼프의 중동 특사이자 뉴욕의 부동산 억만장자인 위트코프는 모스크바에서 푸틴과 3시간 만나 마리화나 소지 혐의로 러시아에 3년 넘게 감금됐던 미국인 교사의 석방과 우크라이나 문제 등을 논의했다.
트럼프는 푸틴과 통화를 끝낸 뒤에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하다” “러시아가 빼앗은 땅은 많은 피를 흘리고 쟁취한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2014년 이전(크림반도 병합 이전) 영토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법을 무시하고 무력으로 다른 나라를 침공한 ‘결과물’을 인정하는 듯한 트럼프의 이 발언에, 미국보다도 더 많은 인도주의적ㆍ경제 금융 지원을 했던 유럽 국가들과 우크라이나는 흥분했다.
칼 빌트 전(前) 스웨덴 총리는 트럼프의 발언을 놓고 “협상을 시작하기도 전에, 주요 양보를 하는 것은 확실히 ‘혁신적인’ 협상 전략”이라고 비꼬았다. 그는 1938년 당시 영국 총리 네빌 체임벌린이 체코의 주데덴란트를 독일에 넘기는 유화 협정을 히틀러와 맺은 것에 빗대어, “체임벌린도 이렇게 낮은 수준은 아니었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6일 리야드 회담을 앞두고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고, 러시아ㆍ우크라이나와 평화를 이루기 위해 매우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크라이나도 협상에 낄 것”이라고 말했으나, 어느 단계에서 참여하게 될지는 밝히지 않았다. 트럼프는 또 유럽 국가들에게 미국 무기를 구매해서 우크라이나에 제공하라고 말했다.
◇미 “유럽 국가가 끼어서 진전된 것 있었나” 반문
우크라이나 전쟁은 제2차 대전 이후에 유럽에서 발생한 최대 규모의 전쟁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 전쟁을 종식하는 협상 시점은 우크라이나가 정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아무런 협상도 없었다.
반면에, 늦어도 4월 20일 부활절까지는 우크라이나 휴전을 원하는 트럼프의 입장에선 유럽국가들의 의견은 중요치 않다.
트럼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특사인 키스 켈로그 예비역 중장은 15일 뮌헨 안보회의에서 “솔직히 말해서 유럽국가들에겐 거슬리게 들리겠지만, 이전 평화 회담들은 너무 많은 나라가 참여해서 실패했다. 평화 협상이 공식적으로 시작되면 우크라이나에겐 협상 좌석이 주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국가들의 직접적인 협상 역할을 부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러시아-우크라이나 특사인 키스 켈로그(오른쪽)가 14일 독일 뮌헨안보회의에서 JD 밴스 미국 부통령과 마크 루테 나토 사무총장 간의 양자 회담에 참석해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켈로그 특사는 “그들[유럽국가들]은 처참하게 실패했다. 우리는 그 길을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크림 반도를 강제로 병합하고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친(親)러 분리주의 반군세력과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계속 무력 충돌하자, 프랑스와 독일이 주도해 민스크 협정 ⅠㆍⅡ (2014~2015년)을 맺었지만 평화정착에는 실패한 것을 지적한 것이다.
한편 월츠 국가안보보좌관은 “유럽국가들이 협상에서 진행되는 일의 순서를 좋아하지 않을 수는 있어도, 그들과 협의 없이 진행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고 반박했다.
◇루비오 국무 “한번 회담이 전쟁 해결하는 것 아니다”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한 번의 회담으로 전쟁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며, 며칠 간 푸틴이 평화 정착에 진지한지 여부를 판단하게 될 것”이라고 CBS 방송에 말했다.
그는 15일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처음 통화한 사실을 확인하며, 이번 회담은 평화로 나아가는 “절차(process)”를 시작하려는 것으로, “지금은 이 절차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진행되는 절차가 있다면, 우크라이나와 유럽도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 “우크라의 ‘50% 희토류 계약’ 거부는 근시안적 판단”
한편 월츠 국가안보보좌관은 16일 폭스 TV 인터뷰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이 이 거래를 수락하는 게 “매우 현명할 것”이라며 “미국 국민은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우크라이나를 도운 것에 대해 보상 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대변인 브라이언 휴즈도 “젤렌스키 대통령이 트럼프 행정부가 제공한 이 탁월한 기회에 대해 근시안적인 판단을 내렸다”며 “미국과의 경제적 유대가 미래의 공격을 막는 최선의 보장”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정부는 미군 주둔, 나토 가입과 같이 러시아의 침공을 억지할 확고한 안전보장을 원한다.
우크라이나는 1994년 자국 내에 있던 약 1900기의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신에, 유엔 안보리와 국제사회의 안전 보장을 담은 부다페스트 양해각서(Memorandum)을 맺었다. 그러나 2014년 러시아의 크림 반도 침공으로 이 각서는 휴지조각이 됐다.
유럽국가들은 트럼프가 우크라이나의 희토류 50% 개발권을 받아내고 모호하게 우크라이나의 안전을 지켜주겠다는 계약이 마치 식민지주의 시대에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작은 나라의 광물을 착취하던 것을 연상케 한다고 비판한다.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