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개월에 걸친 이스라엘군의 무차별 공습으로 폐허가 된 가자지구 북부 자발리야 난민촌에 16일(현지시간) 피란을 갔던 주민들이 귀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전쟁으로 폐허가 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미국이 소유해 휴양지로 개발하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건 구상’에 맞서 아랍권 국가들이 3년간 200억달러(약 29조원)를 투입하는 자체 재건 계획을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18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은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 요르단,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정상이 오는 21일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 모여 가자지구 재건 계획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내달 4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리는 아랍연맹(AL) 정상회의에서 아랍권의 가자지구 재건 구상을 제시하기에 앞서 본격적으로 재건 계획 검토에 나선 것이다.
이들 국가들은 지난 4일 트럼프 대통령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정상회담 후 발표한 가자지구 주민 강제 이주 및 휴양지 개발 구상에 강한 반대 의견을 피력해 왔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220만명이 넘는 가자지구 주민들을 수용하라고 압박해온 이집트와 요르단은 미국의 일방적인 전후 계획에 난색을 표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가자지구와 인접한 두 국가가 팔레스타인인들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 두 국가에 대한 원조를 중단할 수 있다고 압박해 왔고, 이후 이집트는 아랍권의 자체 재건 계획을 준비해 왔다.
사우디 역시 팔레스타인 주권국가 수립 없이는 이스라엘과 수교하지 않겠다고 반대 의견을 밝혔다. 이스라엘과 중동지역 수니파 맹주 사우디의 국교 정상화는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해 미국의 역대 정부가 공을 들여온 사안이다.
사우디의 반대에 네타냐후 총리는 “사우디가 팔레스타인 국가를 원한다면 사우디 안에 세우라”고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집트가 주도해온 아랍권의 가자지구 재건 계획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과 달리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을 바깥으로 이주시키지 않고 국제 사회가 재건에 참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마스를 제외한 팔레스타인 정치 주체들로 ‘팔레스타인 위원회’를 구성해 전후 가자지구를 통치하도록 하되, 아랍 및 걸프 국가들이 200억달러를 모아 향후 3년간 재건 기금으로 활용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요르단강 서안지구를 통치하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역시 아랍권의 재건 첫 단계 비용으로 약 3년간 200억달러를 투입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유엔과 유럽연합(EU), 세계은행(WB)이 최근 추산한 초기 3년간 재건 비용과 일치한다.
가자지구는 15개월에 걸친 이스라엘의 고강도 공습으로 전체 건물의 70%가 파괴되는 등 폐허가 됐다. 유엔 등은 가자지구 파괴 수준으로 미뤄볼 때 재건에 향후 10년간 532억달러(약 77조원)가 필요하며, 특히 초기 3년간 200억달러가 투입돼야 한다고 분석했다.
앞서 유엔은 가자지구 전역에서 이스라엘군 폭격으로 파괴된 건물 잔해 5000t을 치우는 데만 약 21년이 걸릴 것으로 추정되며, 이 비용만 12억달러(약 1조7000억원)가 들 것으로 예측한 바 있다.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