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만에 꺾인 '미국 예외주의'
애틀랜타연은 美 1분기 -2.8% 성장 전망
무역적자 확대·소비 감소 영향 커
관세 부과에 소비·내구재 기업 주가 급락
"다음주 바로 채소·과일 가격 올릴 것"
골드만삭스 CEO 등 "침체 확률은 낮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워싱턴DC 의회의사당에서 두번째 임기 첫 상·하원연설을 한 4일(현지시간)시위대가 4일(현지시간) 시위를 벌이고 있다. 거꾸로 든 미국 국기는 항의와 분노의 표시다. AP
"관세 계획을 철회하지 않으면 미국은 1930년대 대공황과 유사한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T(Tariff·관세)'의 공포'가 커지고 있습니다. 불과 한달 전까지만 해도 시장에서는 미국 경제가 세계적인 경기 둔화 흐름과는 예외적으로 호황을 누릴 수 있다는 '미국 예외주의'적 시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이런 분위기가 급격히 바뀌었습니다. 올해 1분기 마이너스 성장은 물론 '대공황'에 맞먹는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지난 3일 애틀랜타연방준비은행은 올해 1분기 미국 경제의 성장률이 전기 대비 기준 -2.8%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일주일 전(2월 28일) 전망치는 -1.5%, 한달 전 전망치는 3.9%였습니다. 이 전망이 들어맞는다면 미국 경제는 2022년 1분기 이후 3년 만에 역성장하게 됩니다.
실제 1분기 국내총생산(GDP)의 구성 요소를 뜯어보면 어떨까요. 애틀랜타연은이 분석한 각 항목별 기여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지난 3일(현지시간) 멕시코 티후아나에 있는 도요타 제조공장. 미국과 멕시코 캐나다 3국은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이후 사실상 공급망을 공유하고 있었다. 멕시코·캐나다산 물품에 관세를 부과할 경우 미국 자동차 기업들의 타격이 예상된다. 로이터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소비자지출과 순수출의 감소입니다. 이 중 순수출 감소는 트럼프 관세에 대비한 기업들의 '쟁여두기' 효과로 분석됩니다. 지난 1월 미국 상품 무역적자는 25% 이상 확대돼 사상 최대 규모인 1533억달러를 기록했습니다. 무역적자 확대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변화에 따른 일시적인 변동일 수 있다는 것이죠.
반면 소비 감소는 향후 미국 경제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됩니다.
4일 뉴욕 증시에서 S&P500 지수는 전날 발효된 대(對)멕시코·캐나다·중국 관세의 여파를 소화하며 전거래일보다 1.22% 하락한 5778.15에 마감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지난해 11월 이후 최저치입니다. 그간 트럼프 효과로 오른 상승분을 모두 반납한 것입니다.
이날 가장 큰 주가 하락을 겪은 기업 중 하나는 바로 북미 전자제품 판매업체인 베스트바이입니다. 하루만에 13.3% 떨어졌습니다.
코리 배리 베스트바이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실적 발표에서 “중국과 멕시코는 우리가 판매하는 제품의 1·2위 공급원”이라며 “공급업체들이 관세 비용을 소매업체에 전가할 것으로 예상돼 미국 소비자 가격이 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습니다. 중국·멕시코에서 오는 전자제품 가격이 오르면 소비자들이 베스트바이를 찾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에 주가가 급락한 것이죠.
미국 최대 유통업체 중 하나인 타깃도 이날 3% 떨어졌습니다. 브라이언 코넬 타깃 CEO는 “관세로 인해 이번주에 과일과 채소 가격을 인상해야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겨울철에 멕시코산 농산물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며 아보카도, 딸기, 바나나 등의 가격 인상을 시사했습니다.
멕시코·캐나다와 함께 북미 공급망을 구성하고 있는 자동차 업계도 비상이 걸렸습니다. 자동차 제조업체가 밀집한 미시간주 로체스터힐스의 브라이언 바넷 시장은 “(관세로) 자동차 가격이 6000~8000달러 오르면 판매량과 생산량이 15% 줄고, 인력이 9% 적게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날 제네럴모터스(GM) 주가는 4.56%, 포드는 2.88% 떨어졌습니다.
소비심리도 급격히 식고 있습니다. 미시간대 소비자심리지수는 지난해 11월 74에서 지난달 64.7로 하락했습니다. 미시간대 소비자심리지수는 100보다 높으면 소비자들이 시장 전망을 긍정적으로, 낮으면 부정적으로 본다는 뜻입니다. 컨퍼런스보드가 집계하는 소비자신뢰지수는 같은 기간 111.7에서 98.3으로 떨어졌습니다.
질주하던 미국 경제에 제동이 걸리면서 일각에서는 '대공황'에 대한 우려도 나옵니다. 앤드류 윌슨 국제상업회의소(ICC) 사무부총장은 4일 “관세 계획을 철회하지 않으면 미국은 1930년대 대공황과 유사한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의 마에바 쿠진·라나 사제디 애널리스트 역시 미국의 평균 관세율이 이날 기준 1940년대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라며 “스태그플레이션 발생 가능성을 높이기에 충분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는 1929년 뉴욕증시 대폭락으로 대공황이 발생하자 허버트 후버 행정부가 대규모 관세를 부과한 상황을 언급한 것으로 보입니다. 후버 행정부는 이른바 '검은 월요일'로 불리는 1929년 10월24일 미 증시가 폭락하자, 이듬해 추가 경기를 막기 위해 '스무트-홀리 관세법'을 제정해 수입제품 2만여개에 관세를 부과했습니다. 이러한 관세 정책은 프랑스·영국 등의 보복 관세를 불러왔고 경기를 더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는 게 후세 경제학자들의 평가입니다.
다만 '대공황'에 대한 우려는 다소 과장된 것이라는 주장도 나옵니다. 데이비드 솔로몬 골드만삭스 CEO는 이날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져들 확률은 매우 낮다”고 했습니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이날 “중기적으로 우리가 집중하고 있는 것은 메인스트리트(실물경제)”라면서 “월가(금융계)는 잘해왔고 앞으로도 잘할 수 있지만, 우리는 중소기업과 소비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국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