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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코로나’ 사태 오나

감염 대상 급증하는 H5N1
2024년 이후 인간 감염 사례 70건 보고
2023년 이전 1건에서 폭발적인 증가세
젖소 외 여우·곰쥐·집고양이 등도 발병
변종 발생 땐 사람 간 감염 급증 가능성

대응력 떨어진 美 방역 체계
케네디 美 복지부 장관 ‘백신 음모론자’
조류인플루엔자 번져도 백신 안 쓸 듯
미국민 20%도 “백신이 질병보다 위험”
CDC 등 구조조정… 전염병 차단 ‘구멍’


2019년 전 세계를 강타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은 전 세계에 막대한 신체적, 경제적 피해뿐 아니라 심리적 타격까지 입혔다. 인간이 제어할 수 없는 바이러스가 존재하며, 이 바이러스의 습격으로 삶 자체가 마비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이때의 경험은 미지의 병원체에 대한 두려움으로 고스란히 남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경제·사회적으로 큰 충격파를 만들고 있는 2025년 미국인들에게 이런 두려움이 확산하고 있다. 이번엔 두려움의 대상이 조류인플루엔자(H5N1)다. 이미 30년 전부터 닭, 오리 등 가금류에서 지속해서 발생하고 있는 질병이지만 지난해부터 인간과 포유류에서 발병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는 탓이다. 미 지방자치단체들은 “조류인플루엔자는 제대로 관리되고 있다”는 메시지를 지속해서 내고 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은 커져만 간다.

 

코로나19 팬데믹의 공포가 미국 내에 아직 남아 있는 가운데 조류인플루엔자가 닭 등 가금류뿐 아니라 포유류와 인간 등에게까지 확산하며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미국의 대형 양계장에서 닭이 사육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아직 작은 위험 수준… 상황 바뀔 수도

미국 질병예방통제센터(CDC)가 2024년 이후 4일(현지시간)까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 내에서 조류인플루엔자 인체 감염 사례는 총 70건이 보고됐다. 이 중 사망자는 지난 1월 루이지애나주에서 기저질환에 의한 합병증으로 사망한 65세 환자 단 1명뿐이다. 감염자나 사망자 숫자로만 보면 아직 미국이나 전 세계를 긴장시킬 만한 규모는 아니다. CDC의 수석 부국장인 니라브 샤 박사도 지난 1월 말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H5N1의 위험성은 현재 직면하고 있는 다른 위험에 비해 작은 수준”이라고 평했다. 하지만 그는 “이것은 위험한 바이러스”라면서 “상황은 100% 바뀔 수 있다”고 경각심을 일깨웠다.

이는 확산 추세가 불안감을 가지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불과 2023년 이전까지 인간 감염 사례는 1건에 불과해 최근 14개월 동안에만 무려 70배나 감염자가 늘어났다. 더 불안감을 키우는 부분은 감염원이다. 인체 감염된 70명 중 가금류 사육 및 가공 등 ‘조류’와 관계된 일에 종사한 경우가 24건에 불과하다. 오히려 가장 많은 41건의 감염 사례가 조류와 무관한 소를 키우는 낙농업 종사자들에게서 발생했다. 여기에 2건은 기타 야생동물들이 감염원이었다.

CDC는 4일 기준 미국 내에서 977마리의 젖소가 조류인플루엔자에 감염됐음을 확인했다. 소 외에도 다수 포유류에서 감염 사례가 발견되고 있다. 미국 농무부(USDA)는 캘리포니아주 리버사이드 카운티에서 조류인플루엔자에 감염된 4마리의 곰쥐를 발견했다고 지난달 24일 밝혔다. 이외에도 노스다코타주에서는 여우, 워싱턴주에서는 살쾡이, 위스콘신주 쿠거, 매사추세츠주 물개, 오리건주의 집고양이 등의 감염 사례도 발견됐다. 조류인플루엔자가 조류가 아닌 포유류에게 대규모 확산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또 다른 포유류인 인간을 상대로도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작은 변이만으로도 감염과 피해를 만들 수 있다. 이미 지난해 인간 감염 중 15건이 과거 감염 사례와는 다른 변이된 유전자형의 바이러스에 의한 것으로 판명됐다.

연구자들은 해당 변종이 더 심각한 질병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 중이다. 지난 1월 사망자도 이 변종 바이러스 감염자인 것으로 판명됐다. 다행히 아직 인간 간 감염이 쉽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변이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과학적으로 이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조류인플루엔자 백신을 개발 중인 스콧 헨슬리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미생물학과 교수는 “바이러스가 적응하여 사람 간 전염을 시작하면 일반 인구의 감염이 하룻밤 사이에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2020년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이루어지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까’ 불안감도

더 큰 불안감은 과연 미국이 또 한 번의 팬데믹이 발생할 경우 이를 제대로 대응해낼 수 있냐에 대한 것이다. 최근 조류인플루엔자의 확산 흐름은 과학계와 의료계를 긴장시키기에 충분했지만 질병을 통제하는 공공 차원에서의 움직임은 미미하다. 네브래스카대학교 글로벌 보건 보안 센터 소장인 제임스 로러 박사는 최근 발생하고 있는 조류인플루엔자의 포유류 확산 등이 “팬데믹을 향한 전형적인 단계”라면서 “우려할 만한 이런 확산이 연방 및 주 차원에서 더 많은 조치를 촉발해야 했지만 각 이정표가 지나갈 때마다 모두가 그저 어깨를 으쓱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었음에도 여전히 감염병 관리 시스템이 코로나19 이전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감염병 대응 능력이 더 후퇴할 가능성도 상당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취임 뒤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를 연방보건복지부 수장으로 임명했는데 그는 미국에서 대표적인 ‘백신 음모론자’로 꼽힌다. 케네디 주니어는 조류인플루엔자 백신에 대해서도 이미 “위험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힌 바 있다. 조류인플루엔자가 팬데믹으로 발전하더라도 그가 적극적인 백신 보급 정책 등 대응책을 펼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감염병에 대한 인식이 정치 논리에 완전히 잠식됐다는 점은 우려를 더욱 키운다. 조류인플루엔자가 위험 수준으로 확산할 조짐이 보이더라도 과거 코로나19 팬데믹 때처럼 미국인이 주사를 맞기 위해 소매를 걷어올릴지도 불분명한 것이다. 이미 미국 내에서는 정치적 양극화 영향 속 백신에 대한 불신이 폭넓게 확산돼 있다. 지난해 7월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인 5명 중 1명에 해당하는 20%가 백신이 예방하려는 질병보다 더 위험하다고 믿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01년의 6%는 물론 불과 5년 전인 2019년의 11%보다도 2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특히, 공화당 지지자의 31%가 백신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나 2019년의 12%에서 크게 증가했다. 반면, 민주당 지지자 중에서는 이런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은 5%에 불과해 2019년의 10%에 비해 오히려 줄었다. 5년 전에는 정치적 성향과 관계없이 소수만 백신이 위험하다고 생각했던 반면 이제는 특정 정치적 성향에서 백신의 위험성에 대한 인식이 폭넓게 확산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트럼프 행정부는 감염병에 대응하는 정부기관에 대한 구조조정까지 대규모로 이어가고 있다. 정부효율부(DOGE)가 추진하는 정부 구조조정 대상으로 CDC와 식품의약국(FDA), USDA 등 감염병 대응과 관리 등에 관련한 부처가 대거 포함돼 있어서다. 감염병 연구와 대응의 최전선에 서야 할 검역과 연구 인력이 대거 현장을 떠나고 있다. CDC는 지난달 우수성과 직원을 포함한 1300여명의 인원을 감원했는데 이는 전체 인력의 10%에 달한다. FDA도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에 지난달 1000명의 인력을 감원했다. 미 농무부는 산하기관인 국립동물보건연구소네트워크의 사무국 직원 25%를 해고했는데 해고자 중에는 조류인플루엔자 관련 전문가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데이비드 플레밍 CDC 국장 자문위원회 위원장은 “구조조정이 새로운 전염병 위협에 대응하는 CDC와 국가의 능력을 크게 약화시키고 있다”면서 “지금은 대비 태세를 약화시키는 조치를 취하기에 최악의 시기”라고 우려했다. USDA의 전직 관리였던 킴벌리 도드 미시간주립대 수의과학장은 “구조조정이 기관에 미치는 파장과 감염병 및 팬데믹 대비에 미치는 영향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크고 광범위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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