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야간 통금 시간’ 전후 서울 종로구 북촌한옥마을의 모습.관광객들로 북적이던 북촌한옥마을(위 사진)은 오후 5시 통금 시간이 되자 한산해졌다(아래 사진). 카우보이 복장을 한 보안관들이 관광객들을 골목 밖으로 내보내고 있다./장련성 기자
“주민 거주지입니다. 소곤소곤 대화해주세요.”
지난 11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가회동 북촌한옥마을. 한옥마을에 카우보이 옷을 입은 ‘보안관’이 등장했다. 외국인 관광객 8명이 한옥집 앞에서 큰소리로 얘기하자 보안관이 다가가 이렇게 말했다. 오후 5시가 되자 관광객들로 북적였던 골목은 한산해졌다. 보안관들은 “관광 시간이 끝났습니다. 내려가 주세요”라고 말하며 골목에서 사진을 찍던 관광객들을 밖으로 내보냈다.
작년 11월 서울 종로구가 북촌 일대에 ‘야간 통행 금지’ 제도를 시행한 이후 풍경이다. 관광객들은 오후 5시부터 다음 날 오전 10시까지 북촌의 주거 지역을 다닐 수 없다. 어길 경우 과태료 10만원을 부과한다. 통금 제도를 시행한 건 1988년 이후 37년 만이다. 7월부터는 관광버스 통행도 금지한다. 2023년 북촌을 찾은 관광객 수는 665만명. 주민 수의 1000배에 달하는 관광객이 몰리면서 소음, 주차난 등 문제가 불거졌고 종로구가 나서 대책을 마련한 것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작년 11월부터 4개월간 가회동 지역의 유동 인구는 하루 평균 6593명으로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262명(3.8%) 줄었다. 특히 야간 통금 시간의 유동 인구는 평균 5176명으로 1년 전보다 415명(7.4%) 줄었다. 통금 조치가 효과가 있었던 셈이다. 반면 낮 시간대(낮 12시~오후 5시)는 평균 1만5명으로 181명(1.8%) 증가했다.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북촌한옥마을에서 보안관들이 구경온 한 외국인 관광객에게 통금을 설명하고 있다. /장련성 기자
종로구 관계자는 “실제로 과태료를 부과한 사례는 없지만 수시로 안내·계도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날 북촌에서 만난 일본인 관광객 다카하시(21)씨는 “서울 관광 안내 홈페이지에 ‘저녁에 가면 안 된다’고 쓰여 있어 일찍 찾아왔다”고 했다. 관광 가이드들도 저녁 코스로 북촌을 빼고 있다고 한다.
북촌에 사는 주민들은 “이제 일상을 찾았다”고 입을 모았다. 주민 류보람(43)씨는 “예전엔 차 좀 빼달라고 전화하는 게 일이었는데 이젠 살 만하다”고 했다. 그는 “대문을 안 잠그면 관광객들이 들어와 깜짝깜짝 놀랐다”며 “집 마당에 드론이 들어온 적도 있다”고 했다. 주민 조모(49)씨는 “통금 이후 처음으로 저녁에 창문을 열었다”고 했다. 그는 “밤마다 담배 피우고 떠드는 관광객들 때문에 속을 끓였다”며 “층간 소음보다 더한데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고 했다.
종로구에 따르면 소음, 쓰레기 등 문제로 북촌에서 접수된 주민 민원은 2018~2023년 1804건이었다. 하지만 통금을 실시한 이후 4달간 접수된 민원은 한 건도 없었다.
줄어들기만 하던 주민 수도 다시 늘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2019년 4400여 명이었던 가회동 인구는 작년 말 3800여 명까지 줄었다. 종로구 관계자는 “최근 전입 문의가 속속 들어오고 있다”며 “작년 말엔 젊은 부부가 아이를 데리고 북촌으로 이사 왔다”고 했다.
하지만 상인들은 울상이다. 북촌에서 8년째 한복 대여 가게를 하고 있는 김모(46)씨는 “한복은 2시간 단위로 빌려주는데 오후 5시부터 통금이라 3시면 손님이 끊긴다”며 “요즘 매출이 1년 전의 절반밖에 안 된다”고 했다. 일부 상인은 법원에 통금을 풀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내겠다고 했다.
정란수 한양대 관광학부 겸임교수는 “일본이나 이탈리아처럼 관광객들에게 관광세를 받아 주민이나 상인들을 위해 쓰거나 계절에 따라 탄력적으로 통금 시간을 운영하는 방법을 검토해볼 만하다”고 했다. 종로구는 “구가 나서서 북촌 가게들을 홍보하는 방안 등 보완 대책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일부 주민들은 한옥을 개조해 만든 이른바 ‘한옥스테이’ 숙박 업소들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옥마을에서 만난 한 주민은
“한옥스테이에 투숙하면 통금 시간에도 마음대로 다닐 수 있다”며 “밤새 떠드는 단체 관광객들도 있다”고 했다.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북촌한옥마을에서 카우보이 복장의 보안관이 오후 5시가 되자 관광객 퇴장을 유도하고 있다. 지난해 11월부터 북촌 주민의 사생활을 보호하기 /장련성 기자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