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12월엔 계엄 위헌이라 주장하더니 100일 만에 탄핵 반대 목소리 힘 실어...서부지법 폭동·부정선거 이슈에서도 애매한 선 긋기
▲ 지난 2022년 5월10일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 사진=대통령실
2024년 12월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후 한국 사회의 극단적 세력은 헌정 질서를 공격하며 발언권을 키워갔다. 윤 대통령과 비상계엄을 지지하며 대의제 근간을 흔드는 부정선거 의혹을 부실한 근거로 주장하거나 법원 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법원 건물에 쳐들어가고 나서도 사법체계를 부정하고 폭력을 선동하는 발언이 이어지고 있다. 이 극단적 세력과 윤 대통령이 보수진영에 주로 있기 때문에 보수 성향의 대표 신문인 조선일보가 이러한 사회적 흐름에서 어떠한 메시지를 전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12·3 비상계엄 직후 조선일보는 윤 대통령 퇴진을 주장했다. 계엄 선포 다음날인 지난해 12월4일 "도를 심각하게 넘은 조치"라며 계엄선포를 위한 국무회의가 명확히 확인되지 않아 위헌·위법 가능성을 제기했다. 헌법 제89조와 계엄법 2조에 따르면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할 때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이날 1면 기사에서 "윤 대통령의 정치적 자해와 다름없는 계엄 선포"라고 보도했다. 야당에서 탄핵소추안을 준비하자 "계엄 전모를 밝히고 수습책을 제시해야"(5일자 사설) 한다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검찰이 윤 대통령을 '피의자'로 명명했는데도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윤 대통령을 향해 "한심하고 참담"하다며 "질서있는 퇴진의 구체적인 방법론과 시간표를 국민에게 제시해야 한다"고 했다.
▲ 지난해 12월5일자 조선일보 기사
한동안 윤석열 비판 논조 유지
양상훈 주필의 1월16일자 칼럼 제목인 <"尹, 李 둘다 없어졌으면">이 현 시국에 대한 조선일보 입장을 가장 잘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비상계엄으로 보수진영에 어려움을 가져온 윤 대통령을 비판하면서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차기 대통령이 되는 것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명하는 내용이다. 비상계엄 이후 조선일보는 윤 대통령 비판뿐 아니라 이 대표에 대한 비판이 번갈아 등장했다.
12월19일자 사설 <건진·명태균·천공 같은 인물들이 정권 주변에>를 보면 "이력과 정체가 불분명한 인사들"이 대통령 주변에 있었던 것에 대해 "비상식적인 모습"이라고 비판했고 윤 대통령이 헌재 소송 서류를 받지 않는 등의 행태를 보이자 12월12일 대국민 담화에서 "당당히 맞서겠다"더니 수사에 불응하고 재판을 지연시킨다고 비판했다. 지난 1월1일 윤 대통령이 관저 앞 탄핵 반대 시위자들에게 자신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을 막아달라는 뜻의 공개 편지를 보낸 것에 대해 3일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여러 면에서 부적절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고 1월2일 사설에서는 윤 대통령의 자진 출두를 요구했다.
조선일보가 부정선거를 다루는 방법
대통령 탄핵을 결정할 수 있는 헌재를 흔들거나 보수진영을 수렁에 빠뜨릴 수 있는 부정선거, 서부지법 폭동 등과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조선일보가 일부 극단적 세력과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기도 하다. 1월18일자 사설 <尹 "부정선거 증거 많다" 중대 발언 후 지금까지 무소식>에서 "윤 대통령은 그 중대한 발언을 (헌재에서) 한 지 이틀이 지났지만 증거를 하나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고, 2월13일자 사설에선 "근거 없는 중국발 부정선거 의혹"에 정부 여당 인사들이 동조하는 것은 "국민의 혐중 정서를 정치에 이용하는 것"이며 "외교 문제로 비화시키면 국익에 도움이 될 수 없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부정선거 의혹을 연결하는 보도는 문제적이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이유로 부정선거 의혹을 들었고 선관위에 군을 투입했다. 부정선거 자체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논조를 보이지만 선관위를 흔들어 결과적으로 부정선거 의혹에 힘을 싣는 셈이다. 지난해 12월24일자 사설 <편파성 논란 자초한 선관위, 뒷감당할 수 있겠나>를 보면 선관위가 여당과 야당 현수막에 편파적 잣대를 들이댔다고 지적하면서 "이러니 부정선거 음모론이 끊이지 않는다"고 했다.
선관위에 이어 헌재 흔들기
국민 절대 다수가 비상계엄이 위헌이며 파면감이라고 생각하고 조선일보도 이러한 논조를 유지해왔기 때문에 윤 대통령을 직접 두둔하는 목소리를 내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1월 들어 윤 대통령에게 유리한 목소리가 지면에 늘어났다. 일례로 지난 1월9일 김정원 헌재 사무처장이 국회에 나가 계엄 포고령이 "현행 헌법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에 대해 11일 사설에서 "버젓이 재판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다.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지난달 27일 헌재에서 선관위에 대한 결정이 하나 있었다. 선관위에 대한 감사원의 직무 감찰이 '권한 침해'라는 결정이었다. 다음날인 28일 조선일보의 관련 기사 제목은 <65년前 '3·15 부정선거' 내세워…선관위를 성역으로 만든 헌재>였다. 윤 대통령 지지층 입장에선 헌재와 선관위를 묶어서 공격할 수 있는 이슈인데 조선일보가 비판 근거를 제공한 기사이기도 하다.
이런 가운데 조선일보의 헌재 비판은 눈에 띄기 시작했다. 1월31일자 <"내가 제일 왼쪽"… 정치 편향 논란에 빠진 헌재>에선 이념적으로 편향됐다며 헌재 재판관들을 비판했고 2월13일자 <'내란 규명' 시늉만 한 헌재>, 2월15일자 <증인 채택 번복, 갈팡질팡 헌재>, 2월28일자 <尹 탄핵 심판 앞두고 '정치 편향 논란' 자초한 헌재> 등의 기사가 이어졌다.
관련해 조선일보 독자권익보호위원회에서는 "헌재의 탄핵심판은 상당한 시급성을 가지고 결과가 빨리 나오는 게 중요하다"며 "(조선일보가) '헌재가 심판을 너무 급하게 진행한다' '시늉만 한다'고 지적하는 문제가 있다. 헌재뿐 아니라 우리 사법 체계에 대한 신뢰가 사라진 정치 환경에서 조선일보가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게 올바른지 모르겠다"는 지적이 나왔다. 또 "(조선일보 기사를 보면) 헌재가 야당과 편을 먹고 선관위를 옹호하고 있다는 구도 같은 느낌이 들었다"며 "대통령 탄핵 심판에 대한 승복 문제까지 우려되는 상황에서 지나친 헌재 흔들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도 했다.
내란우두머리 혐의자 체포 시도 공수처 비판까지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은 지난해 12월31일(1차), 1월7일(2차) 영장이 발부돼 1월15일 체포됐다. 조선일보는 체포를 앞둔 15일 사설 <공수처는 수사가 목적인가 체포가 목적인가>에서 "상황이 여기까지 온 데는 약속과 달리 소환에 불응한 윤 대통령 탓도 있고, 내란 혐의에 대한 수사권이 없는 공수처가 무턱대고 수사를 밀어붙인 책임도 있다"고 했다. 보름간 이어진 체포 시도에 윤 대통령 지지층이 관저 앞에서 시위하며 목소리가 커진 상황에서 체포에 나선 공수처를 비판한 대목이었다.
▲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체포된 윤석열 대통령이 출석한 가운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이 열린 지난 1월18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에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법원 담장을 넘으려 시도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부지법 폭동은 문제지만 판사도 문제?
서부지법 폭동이 1월19일 새벽에 있었고 온 국민이 혼란에 빠졌다. 그 다음날인 20일자 조선일보 사설 <"野 대표라서" 불구속한다던 법원, 대통령에겐 "증거인멸 염려">에는 위험한 대목이 담겨있다. 법원이 이재명 대표는 야당 대표라 불구속하면서 윤 대통령은 증거인멸 우려를 이유로 구속해 불공정하다면서 "만약 공정하지 못한 (이 대표 관련) 재판 지연으로 논란 속에 대선을 치르게 된다면 그때는 사법부도 감당 못할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했다. 이 대표와 윤 대통령의 혐의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차치하더라도, 법원 건물을 다 깨부수는 상황을 목격한 다음날 '사법부도 감당 못할 상황'이란 무엇을 떠올리게 할까.
서부지법 폭동은 나쁘지만 법원이 원인을 제공했다는 주장도 있다. 1월21일자 사설에서 '서부지법 난입 사건'에 대해 대법관들이 "법치주의에 대한 전면 부정"이라고 한 발언을 인용하면서 "하지만 법원도 생각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를 비롯해 야당 인사들의 재판 결과가 너무 늦게 나온다는 등의 주장을 하면서 "많은 국민은 재판이 진실을 가리는 게 아니라 판사 정치 성향에 따라 결과가 극과 극으로 왔다 갔다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며 "그 불만과 분노가 이번 난입 사태의 한 배경이 된 것은 아닌지 법원도 생각해봐야 한다"고 했다. 서부지법 폭동 사태를 두둔하는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 지난달 22일 손현보 목사 인터뷰 기사
극단적 선동세력 인터뷰까지
윤 대통령의 탄핵심판 마지막 변론(2월25일)을 앞둔 주말인 지난달 22일, 조선일보는 탄핵반대 집회를 이끄는 세이브코리아 손현보 목사 인터뷰 기사를 지면에 실었다. 현재 극단적 세력의 양대 축은 이른바 '광화문파'의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 '여의도파'인 손현보 목사다. "이 사람(이재명)이 대통령 되면 법을 바꿔서라도 영구 집권할 가능성이 있다", "전체주의로 가는 것", "공산주의나 전체주의 국가가 들어서면" 등 일부 극단적인 유튜브나 탄핵반대 집회에서 나올 법한 과장·왜곡된 언어가 그대로 지면에 실렸다. 손 목사는 진화론까지 부정하며 소수자 혐오발언을 일삼는 인사다.
조선일보가 극단적인 주장을 하더라도 윤 대통령 지지층과는 함께 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인터뷰였다. 조선일보 2월10일자 기사 <개신교계·2030세대 합류, 지역도 전국화…세력 커진 '반탄 집회'>를 보면 '탄핵 반대' 세력의 스펙트럼이 넓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22일 탄핵 인용과 탄핵 기각을 주장하는 두 헌법학자의 주장을 반반씩 실었다. 위헌이 명백한 사안에 대해 탄핵 기각 주장을 동등하게 실은 것도 논란이었는데 지난 17일에는 탄핵 반대 주장을 기각과 각하로 나눠 인용, 기각, 각하를 주장하는 3명의 헌법학자 주장을 나란히 실었다. 3분의 2를 탄핵 반대 주장으로 채운 것이다.
▲ 지난 8일 서울 광화문 앞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 모습. ⓒ연합뉴스
그 와중에 <광주에 모인 반탄 3만명…"여기도 이런 목소리 있다, 알리려 나와">(2월17일), <뜨거운 광장…尹 최종 변론 앞두고, 대전 최대 규모 '탄핵 반대 집회'>(2월24일), <부산, 안성, 서산…'탄핵 반대' 광화문·여의도 집결>(3월3일), <광화문이 꽉 찼다>(3월17일 사진기사) 등 꾸준히 탄핵반대 집회 소식을 전하고 있다. "계엄 선포는 헌법 위반이 다수설"이라며 "윤 대통령 탄핵 소추가 가능하다는 해석이 많다"(12월5일)고 했던 약 100일 전과 비교해 너무 멀리온 건 아닐까.
미디어오늘